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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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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코르 유적은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 제국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어 1431년 타이의 침략으로 멸망하기까지 앙코르 왕조가 건설한 다양한 사원과 유적을 통칭한다. 앙코르 와트, 앙코르 톰, 바이욘 사원 등 힌두교와 불교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들이 있으며, 19세기 이후 재발견되어 복원 작업을 거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앙코르 유적은 캄보디아의 주요 관광 자원이며, 관광객 증가에 따른 보존 문제와 지속 가능한 관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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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적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앙코르
원어 이름"អង្គរ" (크메르어)
"យសោធរបុរៈ" (크메르어)
로마자 표기Ângkôr (크메르어)
Yasodharapura (크메르어)
다른 이름야소다라푸라
위치시엠레아프 주, 캄보디아
지역동남아시아
유형고고학 유적지
면적40,100 헥타르
포함 지역앙코르
롤루오스
반테이 스레이
건설 시기서기 9세기 후반
폐허 시기서기 1431년
문화포스트-클래식
건축 양식바켕
프레 룹
반테이 스레이
클레앙
바푸온
앙코르 와트
바이욘
포스트-바이욘
상태복원 및 파괴됨
관리압사라 당국
접근외국인은 티켓 필요
유네스코 세계 유산 ID668
유네스코 등재 연도1992년
유네스코 위험 유산 지정 기간1992년–2004년
유네스코 등재 기준문화: i, ii, iii, iv
역사
수도크메르 제국의 수도
이미지 정보
앙코르 와트 지도
앙코르 와트 지도
앙코르 최대 사원 앙코르 와트
앙코르 최대 사원 앙코르 와트
좌표 정보
추가 정보
웹사이트http://whc.unesco.org/en/list/668/

2. 역사

앙코르 시대는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 "만국의 군주", "신왕"이라고 선언했을 때부터 시작되어, 1431년 타이 침략자들이 크메르 수도를 약탈하여 프놈펜 남쪽으로 이주할 때까지를 말한다.

이 지역에서는 9세기부터 여러 왕들이 건설을 시작했다. 이 유적과 특히 관련이 깊은 왕은 수리아바르만 2세(1113년 - 1145년)와 자야바르만 7세(1181년 - 1218년)이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앙코르 와트 건설을,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톰 대부분을 건설했다고 여겨진다.

자야바르만 7세 사후 앙코르는 아유타야 왕조의 침입을 여러 차례 받아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후 폰야 야트 왕은 앙코르를 버리게 되었다.

2. 1. 앙코르 왕조의 성립과 발전 (9세기~13세기)

802년 크메르의 힌두교도 황제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 "만국의 군주", "신왕"이라고 선언하면서 앙코르 시대가 시작되었다.[4] 그는 씨엠립에서 앙코르 톰 남문 왼편에 있는 프놈 쿨렌 언덕에 왕조를 건설하고, 나라 이름을 캄부자(Kambuja)로 정했다.[4] 앙코르 왕조는 802년-1432년까지 630여 년간 28명의 왕이 통치했다.[4]

자야바르만 2세는 시바 숭배와 자신을 연결시키며 "신왕"(''데바라자'')이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새로운 지위를 명확히 했다.[4] 그는 톤레삽 호의 북쪽 끝에 하리하랄라야(현재 롤루오스로 알려짐) 도시를 건설했다.[4]

889년, 야소바르만 1세가 왕위에 올랐다.[4] 그는 하리하랄라야의 옛 수도 근처에 프놈 바켕 언덕과 사원을 중심으로 야소다라푸라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4] 그는 바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저수지를 건설하기도 했다.[4]

1113년부터 1150년 사이에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앙코르 와트가 건설되었다.[4] 시바에게 봉헌하는 사원이 아니라 비슈누에게 봉헌하는 사원을 지었다는 점에서 크메르 왕국의 전통을 깨는 것이었다.[4]

11~12세기의 비슈누 상


1150년 수르야바르만 2세가 죽자, 왕국은 내분에 휩싸였다.[4] 이 기회를 틈타 참파1177년 메콩강과 똔레삽 호수를 타고 수로로 침공하였다.[4] 그러나 훗날 자야바르만 7세가 되는 크메르의 왕자는 가신들을 거느리고 호수와 육지에서 전투를 벌여 참족을 물리쳤다.[4] 1181년 자야바르만 7세는 왕위에 올라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4]

자야바르만 7세는 폐허가 된 야소다라푸라에 성벽도시인 앙코르 톰바이욘 사원을 건설했다.[4] 또한, 그의 부모에게 바치는 타 프롬프레아 칸과 같은 사원도 건설했다.[4] 이러한 대규모 공사로 인해 국가의 종교는 힌두교에서 대승 불교로 바뀌게 되었다.[4]

파리동양박물관의 자야바르만 7세의 상


앙코르톰 남문

2. 2. 앙코르 왕조의 쇠퇴와 멸망 (14세기~15세기)

14세기부터 앙코르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의 침입이 잦아졌고, 내부적인 종교 분쟁도 발생했다.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힌두교에서 상좌부 불교로 개종하면서 앙코르 문명의 기반이 된 힌두교적 왕권 개념이 훼손되었다는 주장도 있다.[8]

1431년 아유타야 왕조의 침략으로 앙코르는 함락되었고, 많은 조각상과 사람들이 아유타야나 롱벡으로 옮겨졌다. 크메르 제국의 수도는 프놈펜으로 옮겨졌고, 이후 우동, 현재의 프놈펜으로 다시 이동했다. 앙코르는 앙코르 와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버려져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앙코르의 쇠퇴 원인으로는 아유타야와의 지속적인 전쟁, 종교적 변화 외에도 전염병, 지진, 홍수, 급격한 기후 변화와 같은 자연재해, 또는 중세 온난기에서 소빙하기로의 전환으로 인한 물 부족 등이 제시되기도 한다.[9][10] 연륜연대학 연구에 따르면 15세기 초 동남아시아 본토에서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여 앙코르의 운하와 저수지가 고갈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1]

2. 3. 앙코르의 재발견과 복원 (19세기 이후)

앙코르는 19세기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탐험되어 발굴될 때까지 밀림 속에 묻혀 있었다. 1586년 포르투갈의 수도사 안토니우 다 마달레나가 앙코르 와트를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기록되었으며, 17세기에는 일본인들의 정착을 증명하는 14개의 비문이 남아있다.[12] 가장 잘 알려진 비문은 1632년에 앙코르 와트에서 크메르 신년을 기념한 우콘다후 카즈후사에 대한 것이다.[13]

압사라 무용수들이 20세기 초 앙코르 와트에서 공연하는 모습.


앙코르는 현지 크메르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1860년 앙리 무오(Henri Mouhot)와 1865년 안나 레오노웬스 등 유럽 방문객들에게도 소개되었지만,[14] 19세기 말까지 숲 속에 가려져 있었다. 루이 델라포르트와 같은 유럽 고고학자들과 아돌프 바스티안과 같은 민족학자들이 유적지를 방문하여 유럽에서 널리 알렸다. 이는 결국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한 장기적인 복원 과정으로 이어졌다.

1907년부터 1970년까지는 프랑스 극동학원의 지휘 아래 작업이 진행되어 숲을 제거하고, 기초를 수리하고, 건물을 빗물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배수 시설을 설치했다. 또한, 조르주 코데, 모리스 글레이즈, 폴 뮤스, 필립 스테른 등 학회와 관련된 학자들은 현재 앙코르에 대한 이해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학문과 해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프레아 칸(Preah Khan)


타 케오(Ta Keo)


타 프롬(Ta Phrom)


캄보디아 내전이 끝난 후 작업이 재개되었고, 1993년 이후로는 인도, 독일, 일본, 유네스코가 앙코르 역사 유적지 보호 및 개발을 위한 국제 조정 위원회(ICC)를 통해 공동으로 조정해 왔으며, 캄보디아의 작업은 1995년에 설립된 앙코르 및 시엠레압 지역 보호 및 관리 당국(APSARA)에서 수행하고 있다. 일부 사원은 아나스타시스(anastylosis) 방법에 따라 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분해하여 콘크리트 기초 위에 재조립되었다.[15]

세계기념물기금은 프레아 칸(Preah Khan), 우유 바다의 휘젓기(앙코르 와트에 있는 49m 길이의 부조 장식), 타 솜(Ta Som), 프놈 바켄(Phnom Bakheng)을 지원했다. 앙코르로의 국제 관광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증가하여 2014년에는 연간 약 200만 명의 방문객에 이르렀다.[15] 이는 추가적인 보존 문제를 야기하지만, 복원 노력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제공했다.[16]

3. 주요 유적

앙코르 위성 사진 및 지도


앙코르 유적은 앙코르 와트, 앙코르 톰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원과 유적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유적은 다음과 같다.

  • 중심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놈 바켕900년경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박세이 참크롱10세기 중반(947년)하르샤바르만 1세, 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톰마논12세기 전반수리아바르만 2세힌두교
차우 사이 테보다12세기 전반수리아바르만 2세힌두교
스피안 토마11세기 초
프라삿 바이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 동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 룹961년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타 케오1000년경자야바르만 5세힌두교(시바)
반테아이 삼레12세기 중반수리아바르만 2세힌두교(비슈누)
타 프롬1186년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스라 스랑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반테아이 쿠데이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힌두교 양식과 혼합)
Ta Nei|타 네이영어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
동 바레이야쇼바르만 1세
동 메본952년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프라삿 크라반921년하르샤바르만 1세힌두교


  • 북동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Krol Ko|크롤 코영어12세기 말~13세기 초자야바르만 7세불교
냐크 포안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타 솜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 북동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반테아이 스레이967년라젠드라바르만 2세, 자야바르만 5세힌두교(시바)
프놈 쿠렌802년자야바르만 2세
쿠바르 스피안11세기 중반힌두교
벤멀리아12세기아마도 수리아바르만 2세 외힌두교(비슈누)


  • 북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아 칸1191년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 서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서 바레이11세기 후반자야바르만 6세
서 메본11세기 후반수리아바르만 1세힌두교(비슈누)
Ak Yum|악 욤영어7~9세기힌두교(시바)


  • 남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왓 아토비아12세기수리아바르만 2세힌두교(비슈누)
Phnom Krom|프놈 크롬영어9세기 말~10세기 초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비슈누, 브라흐마)


  • 남동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아 코879년인드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바콘881년인드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롤레이893년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스피안 프라프토스12세기 말~13세기 초자야바르만 7세


3. 1. 앙코르 와트

수리아바르만 2세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수리아바르만 2세(Suryavarman II)가 1113년에서 1150년 사이에 건설했다.[23] 수리아바르만은 왕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위에 올랐는데, 비문에 따르면 전투 중 신화 속의 조류 인간 가루다(Garuda)가 뱀을 죽이는 것처럼 라이벌의 전쟁 코끼리 위로 뛰어올라 그를 죽였다고 한다.[23]

수리아바르만은 군사 원정, 외교, 굳건한 국내 행정을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진 후, 자신의 개인적인 사원 능묘로 앙코르 와트 건설을 시작했다. 그는 크메르 왕들의 전통을 깨고 인도에서 동시에 일어난 바이슈나바교의 영향을 받아 시바(Shiva)가 아닌 비슈누(Vishnu)에게 사원을 봉헌했다. 각 변의 길이가 거의 800m에 달하는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의 우주론을 장엄하게 묘사하는데, 중앙 탑은 신들의 고향인 메루산을, 외벽은 세상을 둘러싼 산들을, 해자는 그 너머의 바다를 나타낸다.[23]

크메르의 데바라자(devaraja, 신왕)를 신과 동일시하고 그의 거처를 천상의 거처와 동일시하는 전통적인 주제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원과 그 부분들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치수 자체에도 우주론적 의미가 있다.[23] 수리아바르만은 사원의 벽을 부조로 장식했는데, 신화의 장면뿐만 아니라 자신의 황실의 삶도 묘사했다. 한 장면에서 왕 자신은 신하들보다 더 큰 크기로 묘사되어 있으며, 높은 왕좌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조정을 열고, 시중드는 사람들이 파라솔과 부채로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앙코르 초기에는 비슈누 숭배가 시바 숭배보다 부차적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12세기 초 수리아바르만 2세가 자신의 능묘로 앙코르 와트를 건설하면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 와트의 중심 종교 이미지는 비슈누의 이미지였으며, 비문에는 수리아바르만을 "파라마비슈누로카(Paramavishnuloka)" 즉 "비슈누의 천상 세계에 들어간 자"로 확인하고 있다.[23] 그러나 종교적 혼합주의는 크메르 사회에 철저하게 남아 있었기에, 수리아바르만의 비슈누로의 전환이 시바교를 국가 종교로서 반드시 폐지한 것은 아니며, 사원에는 왕실 링검(lingam)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23]

3. 2. 앙코르 톰

1177년 참파메콩강과 똔레삽 호수를 통해 수로로 침공하여 크메르의 수도인 야소다라푸라를 약탈하고 왕을 죽였으나, 자야바르만 7세가 되는 왕자가 가신들을 거느리고 호수와 육지에서 전투를 벌여 참족을 물리쳤다.[7] 1181년 자야바르만 7세는 왕위에 올라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폐허가 된 야소다라푸라에 성벽 도시인 앙코르 톰바이욘 사원을 건설하였다.

바이욘 사원의 석벽 부조는 왕과 참족의 전투 장면뿐만 아니라 부근 촌락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7]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힌두교 사원은 모두 부처 상을 모시게 되었고, 앙코르 와트도 잠시 불교 사원이 되었다.

앙코르 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유적들이 있다.

유적명건설 시기건설자종교
바이욘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코끼리 테라스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문둥왕 테라스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피미아나카스10세기 말~11세기 초수리아바르만 1세힌두교
프라삿 수르 프라트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
클레앙11세기 초자야바르만 5세, 수리아바르만 1세힌두교
바푸온1060년경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힌두교, 15세기 이후 불교
Preah Palilay영어12세기 전반불교
프레아 피투12세기 전반힌두교(시바)


3. 3. 기타 유적

앙코르 유적군에는 앙코르 와트앙코르 톰 외에도 수많은 사원과 유적들이 있다. 주요 유적들은 다음과 같다.

  • 중심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바이욘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코끼리 테라스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문둥왕 테라스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피메아나카스10세기 말~11세기 초수리야바르만 1세힌두교
프라삿 수르 프라트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
클레앙11세기 초자야바르만 5세, 수리야바르만 1세힌두교
바푸온1060년경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힌두교, 15세기 이후 불교
Preah Palilay|프레아 팔릴라이영어12세기 전반불교
프레아 피투12세기 전반힌두교(시바)
프놈 바켕900년경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프라삿 바이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박세이 참크롱10세기 중반(947년)하르샤바르만 1세, 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톰마논12세기 전반수리야바르만 2세힌두교
차우 사이 테보다12세기 전반수리야바르만 2세힌두교
스피안 토마11세기 초


  • 동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 룹961년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타 케오1000년경자야바르만 5세힌두교(시바)
반테아이 삼레12세기 중반수리야바르만 2세힌두교(비슈누)
타 프롬1186년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스라 스랑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반테아이 쿠데이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힌두교 양식과 혼합)
Ta Nei|타 네이영어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
동 바레이야쇼바르만 1세
동 메본952년라젠드라바르만 2세힌두교(시바)
프라삿 크라반921년하르샤바르만 1세힌두교


  • 북동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Krol Ko|크롤 코영어12세기 말~13세기 초자야바르만 7세불교
냐크 포안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타 솜12세기 말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 북동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반테아이 스레이967년라젠드라바르만 2세, 자야바르만 5세힌두교(시바)
프놈 쿠렌802년자야바르만 2세
쿠바르 스피안11세기 중반힌두교
벤멀리아12세기아마도 수리야바르만 2세힌두교(비슈누)


  • 북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아 칸1191년자야바르만 7세불교(관음보살)


  • 서부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서 바레이11세기 후반자야바르만 6세
서 메본11세기 후반수리야바르만 1세힌두교(비슈누)
Ak Yum|악 욤영어7~9세기힌두교(시바)


  • 남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왓 아토비아12세기수리야바르만 2세힌두교(비슈누)
Phnom Krom|프놈 크롬영어9세기 말~10세기 초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비슈누, 브라흐마)


  • 남동부 교외

유적명건립 시기건립자종교
프레아 코879년인드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바콘881년인드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롤레이893년야쇼바르만 1세힌두교(시바)
스피안 프라프토스12세기 말~13세기 초자야바르만 7세



이 유적들은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크메르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4. 앙코르의 종교

1296년, 원나라의 외교관 주달관(周達觀)은 앙코르에 도착하여 1년간 머물며 크메르 사회에 대한 기록인 『진라풍토기(眞臘風土記)』를 남겼다. 이 기록은 앙코르의 종교, 사법, 왕권, 사회 규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앙코르의 일상 생활에 대한 중요한 정보원으로 평가받는다.[8] 주달관은 왕실 행렬을 묘사하면서 "코끼리 위에 서서 신성한 칼을 손에 든 군주"를 언급했는데, 이는 앙코르의 왕권과 종교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앙코르의 종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종교 운동이 혼합된 형태를 보인다.


  • 조상 숭배와 링가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토착 종교 의례와 샤이바교의 혼합
  • 왕을 신과 동일시하는 왕권 신격화 (동남아시아 힌두교 문명의 특징)
  • 힌두교 (특히 시바와 링가 숭배, 비슈누 숭배)
  • 불교 (대승불교와 상좌부불교)


일부 학자들은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 제국상좌부 불교로 개종하면서 앙코르 문명의 기반이었던 힌두교적 왕권 개념이 훼손되어 앙코르가 쇠퇴했다고 주장한다.[8] 조르주 코데에 따르면, 상좌부 불교는 개인의 궁극적인 실재성을 부정함으로써 왕실 인격 숭배의 활력을 약화시켰다.[8] 또한, 광대한 사원 단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많은 노동력이 불교의 확산으로 인해 잠식되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앙코르 시대에는 모든 비종교 건물들이 나무와 같은 부식성 재료로 지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기념물들은 대부분 종교 건축물이다.[8]

4. 1. 힌두교

앙코르 시대 초기에는 힌두교가 지배적인 종교였다.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이 주로 숭배되었으며, 왕은 신왕(데바라자)으로 여겨졌다.[4] 왕은 시바 신과 동일시되었고, 샤이바교가 국교가 되었다.[4] 중앙 링검의 이름은 왕 자신의 이름에 시바를 지칭하는 접미사 "-에스바라"를 결합한 것이었다.[4]

948년 라젠드라바르만(Rajendravarman)에 의해 봉헌된 박세이 참크롱(Baksei Chamkrong)은 시바(Shiva)상을 모셨던 사원 피라미드이다.


예를 들어, 881년에 작성된 비문에는 왕 인드라바르만 1세가 ''인드레슈바라''라는 링검을 세웠음이 나타나 있다.[4] 또 다른 비문에는 인드라바르만이 그의 궁정에 8개의 링검을 세웠고, 그것들은 "시바의 8가지 요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음을 알려준다.[4] 마찬가지로, 944년에 통치를 시작한 라젠드라바르만은 프레 룹 사원을 건설했는데, 그 중앙 탑에는 ''라젠드라바드레슈바라''라는 왕실 링검이 있었다.[4]

앙코르 와트비슈누 신에게 봉헌된 사원이며, 앙코르의 많은 유적들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의 중심 종교 이미지는 비슈누의 이미지였으며, 비문에는 수르야바르만 2세를 "파라마비슈누로카(Paramavishnuloka)" 즉 "비슈누의 천상 세계에 들어간 자"로 확인하고 있다.[4] 그러나 수르야바르만의 비슈누 숭배가 시바교를 국교에서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며, 앙코르 와트에도 왕실 링검(lingam)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4]

4. 2. 불교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는 이전 왕들과는 다르게 대승불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새로운 수도인 앙코르 톰 중심부에 바이욘이라는 불교 사원을 건설하면서 불교를 왕국의 국교로 삼았다. 바이욘의 유명한 얼굴 탑에서 왕은 백성을 향한 연민으로 움직이는 관세음보살로 묘사되었다.[7] 따라서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의 왕권 신격화를 영속시키면서, 그 신격의 요소를 시바가 아닌 보살과 동일시할 수 있었다.

인드라바르만 2세가 사망한 1243년경, 힌두교 복원이 시작되었다. 다음 왕인 자야바르만 8세는 힌두교의 우상 파괴자였으며, 그의 훌륭한 전임자가 불교로 개종시켰던 힌두교 사원들을 재건하는 데 능숙했다. 복원 과정에서 바이욘 사원은 시바 사원이 되었고, 중앙에 있던 3.6미터의 불상은 근처 우물 아래로 던져졌다. 모든 곳에서 불상은 링가로 대체되었다.

1296년에 앙코르를 방문한 중국 여행가 주달관(周達觀)은 세 개의 별개 종교 집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세한 종교는 상좌부 불교였다. 주달관(周達觀)은 승려들이 머리를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있음을 관찰했다. 불교 사원들은 주달관(周達觀)에게 그 단순함으로 인상을 주었다. 그는 붓다의 형상이 금박을 입힌 석고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언급했다.

주달관(周達觀)이 확인한 다른 두 집단은 브라만(Brahmin)과 샤이바교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달관(周達觀)은 브라만에 대해서는 그들이 종종 고위 관리로 고용되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도교도"라고 부른 샤이바교도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숭배하는 유일한 형상은 중국의 토지신 사당에서 발견되는 돌과 유사한 돌덩이"라고 적었다.

13세기 동안, 왕국 드바라바티와 하리푼차이를 통해 전파된 상좌부 불교가 앙코르에 나타났다. 점차 상좌부 불교는 대승 불교와 샤이바교를 대체하며 캄보디아의 주요 종교가 되었다. 앙코르에서의 상좌부 불교 수행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5. 앙코르의 관리 및 보존

1993년 캄보디아 내전이 끝난 후, 앙코르 유적 복원 작업이 재개되었다. 프랑스, 일본, 유네스코는 앙코르 역사 유적지 보호 및 개발을 위한 국제 조정 위원회(ICC)를 설립하여 공동으로 보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1995년 앙코르 및 시엠레압 지역 보호 및 관리 당국(APSARA, 압사라 국가기구)을 설립하여 앙코르 유적을 관리하고 있다.[15]

앙코르 유적은 캄보디아 정부의 아프사라국가기구(APSARA)에 의해 발굴, 복원부터 관광 개발까지 일괄 관리되고 있다. 앙코르 세계유산 지역은 구역 1(지도에서 노란색 음영 부분)과 구역 2(구역 1을 둘러싸는 직사각형으로 구획된 빨간색 음영 부분)로 나뉜다.

일부 사원은 아나스타시스(anastylosis) 방법에 따라 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분해하여 콘크리트 기초 위에 재조립되었다.[15] 세계기념물기금(World Monuments Fund)은 프레아 칸(Preah Khan), 우유 바다의 휘젓기(앙코르 와트에 있는 49미터 길이의 부조 장식), 타 솜(Ta Som), 프놈 바켄(Phnom Bakheng) 복원을 지원했다.[15]

최근 몇 년 동안 앙코르를 방문하는 국제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여 2014년에는 연간 약 200만 명에 이르렀다.[15] 이는 복원 노력에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추가적인 보존 문제를 야기했다.[16] 앙코르 유적지 관광객 증가에 따라 새로운 호텔과 레스토랑이 건설되고 있는데, 각 건설 프로젝트는 지하수면(지하수면)에 도달하기 위해 지하를 굴착한다. 지하수면의 저장 용량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하수 수요는 앙코르 유적지의 사질토 지반 안정성을 저해하여 균열, 틈,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17] 최고 관광 성수기가 캄보디아의 건기와 일치하여 지하수가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시기가 아닐 때 과도한 지하수 양수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20]

약탈은 한때 앙코르 고고학적 경관에 대한 위협이었다. 앙코르 관리 감독을 맡은 캄보디아의 공식 기구인 APSARA는 2005년에 "현지 주민들을 이용한 파괴 행위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중무장한 중개인들이 탱크나 장갑차를 이용해 물건을 운반하고, 종종 캄보디아 국경 너머로 판매한다"고 언급했다.[18] 이러한 발언 이후 캄보디아에서는 고고학 유물 절도가 크게 감소했다.[19]

증가하는 관광객 수는[20] 앙코르의 고고학 유적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부분 사암으로 이루어진 앙코르의 기념물을 걷고 오르는 행위가 그 원인이다. 이러한 통제되지 않은 관광으로 인한 직접적인 압력은 미래에 기념물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21] 앙코르와 같은 유적지에서는 관광이 불가피하므로 유적지 관리팀은 유적지를 배타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관리팀은 사람들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며,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앙코르를 방문하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의 관리가 빠르게 붕괴되는 구조물에 매우 중요하다.

향후 유네스코와 현지 당국은 유적지의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있다. 1992년 이후 유네스코는 앙코르 보존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수천 개의 새로운 고고학 유적지를 발견하고 보호 문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20년 후, 문화적 민감성을 이유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적지에서 상근하고 있다. 관광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적지의 특정 지역만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1992년의 예방 조치와 미래 집행에 대한 요구 사항의 상당 부분이 실패했다. 세계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정책 입안은 성공적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행이 실패했다. 첫째, 캄보디아에는 이해관계 충돌이 있다. 유적지는 캄보디아에 문화적으로 중요하지만, 캄보디아는 가난한 국가이며 관광은 캄보디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국가 최대 관광지인 앙코르의 일부를 폐쇄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정부의 유적지 관리 조직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캄보디아 정부는 유적지를 관리할 강력한 문화 전문가 및 고고학자 팀을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COVID-19 범유행 기간 동안 관광객 감소로 캄보디아 관광업에 종사하는 1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22]

참조

[1] 서적 Cambodian-English Dictionary Bureau of Special Research in Modern Languages,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77
[2] 서적 Chuon Nath Khmer Dictionary Buddhist Institute 1966
[3] 서적 A Sanskrit-English Dictionary: With References to the Best Edition of Sanskrit Author and Etymologies and Camparisons of Cognate Words Chiefly in Greek, Latin, Gothic, and Anglo-Saxon https://books.google[...] Asian Educational Services 1866
[4] 논문 A comprehensive archaeological map of the world's largest pre-industrial settlement complex at Angkor, Cambodia 2007
[5] 뉴스 Metropolis: Angkor, the world's first mega-city https://web.archive.[...] The Independent 2007-08-15
[6] 웹사이트 Lost City of Angkor Wat https://web.archive.[...] 2018-03-28
[7] 웹사이트 Angkor Wat: Temple of Boom http://www.world-arc[...] 2011-11-07
[8] 웹사이트 Divining Angkor http://ngm.nationalg[...] 2009-07
[9] 논문 Climate as a contributing factor in the demise of Angkor, Cambodia 2010
[10] 뉴스 Climate change killed ancient city https://web.archive.[...] Australian Associated Press 2007-03-14
[11] 뉴스 The secret life of ancient trees https://web.archive.[...] 2009-11-10
[12] 웹사이트 Japanese Diaspora – Cambodia http://www.discovern[...] 2014-11-06
[13] 웹사이트 History of Cambodia, Post-Angkor Era (1431 – present day) https://web.archive.[...]
[14] 서적 An Englishwoman in the Siamese Court 1870
[15] 웹사이트 Beyond Angkor: How lasers revealed a lost city https://www.bbc.co.u[...] BBC 2014-09-23
[16] 뉴스 Tourist invasion threatens to ruin glories of Angkor
[17] 뉴스 Heritage Site in Peril: Angkor Wat is Falling Down https://www.independ[...] 2008-03-14
[18] 뉴스 Siem Reap Journal; A Cruel Race to Loot the Splendor That Was Angkor https://query.nytime[...] 2005-03-21
[19] 뉴스 Cambodian government takes over management of three Angkor archaeological sites from World Monuments Fund https://www.theartne[...] the art newspaper 2024-02-02
[20] 뉴스 Private water raiding threatens Angkor's temples built on sand https://www.theguard[...] 2010-09-27
[21] 뉴스 Too Much Adoration at Cambodia's Angkor Temples http://travel.latime[...] 2008-07-19
[22] 웹사이트 Cambodians revel now tourist free Angkor wat https://www.voanews.[...] VoA 2020-06-14
[23] 뉴스 The lost city http://www.theage.co[...] 2013-06-14
[24] 웹사이트 Ankor https://whc.unesco.o[...] UNESCO 2024-07
[25] 간행물 アンコール世界遺産エリア・ツーリストマネジメントプラン アプサラ・ナショナル・オーソリティ 2012-12
[26] 웹사이트 Wat Athvea Temple, Siem Reap Province, Cambodia https://www.oriental[...]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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